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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dk@hyo.ac.k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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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6 Apr 2026 16:53: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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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효는 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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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b8bB/btrHdbmYys9/ImtcjllfSJyYd6G4qd3Av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b8bB/btrHdbmYys9/ImtcjllfSJyYd6G4qd3Av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8bB/btrHdbmYys9/ImtcjllfSJyYd6G4qd3Av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b8bB%2FbtrHdbmYys9%2FImtcjllfSJyYd6G4qd3Av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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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현대적 효 개념 정립 요청이 뜨겁다. 원래 효는 젊은 자녀가 늙은 부모를 짊어지고 있는 형상에서 비롯됐다. 생활능력이 없는 늙으신 부모 봉양을 효라고 했다면 효는 약자(노부모)에 대한 강자(젊은 자녀)의 정신&amp;middot;물질적 부양과 공경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효의 본질과 개념이 나왔다. 하지만 시대마다 다른 부양과 공경의 방법적 차이가 생겼다. 물에 비유하자면 샘물이 흘러 냇물이 되고 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는 이치이다. 비록 시공을 달리하며 흐르다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지만 물의 기본 성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만일 물의 본래 성분이 사라지고 변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된다. 메주의 원료는 콩이지만 메주를 콩이라 하지 않는다. 메주로 간장과 된장을 담지만 메주를 간장 혹은 된장이라 하지 않는다. 물로 술을 만든다 해도 물을 술이라 하지 않는다. 본래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효도 마찬가지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혹 효의 본질이 변질됐다면 효가 아니다. 효와 충을 실례로 살펴보자. 역사 속에서 효와 충은 유사개념으로 말해 왔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효는 바꿀 수 없는 천륜관계의 도덕적 요청이고 충은 가변적 인륜관계의 정치적 요청이다. 그런데도 둘을 오인했다. 오인보다는 유도했다. 불변적인 효를 가변적인 충에 갖다 붙여 왕조사회의 정치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부자관계의 근본은 친함[親]이고 군신관계의 근본은 바름[義]이다. 부자의 친함은 불가역적 천륜이지만 군신관계의 바름은 불의(不義)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가변성이 있다. 효의 대상은 하나여도 충의 대상은 여럿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럼에도 둘을 같이 말한 건 영속적 정권 유지를 위한 군주사회의 요청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절대 군주에 대한 충성 복종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이후 효는 수직적 왕조사회에서 강력한 정치질서의 안정적 기반으로 자리했다. 강자의 약자 보호가 아닌 약자의 강자 섬김이 되면서 효의 본질은 바뀐 듯 보였다. 또 그것이 통했고 당대 사회가 용인하고 이용했다. 이런 효의 변질은 효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가 요구했던 하나의 방법일 뿐 본질의 전도는 아니다. 효의 본래 의미가 희석되고 순종과 복종의 방법적 요소가 강조되면서 마치 본질이 변한 것처럼 오해되지만 본래 효 개념의 변화는 아니다. 근현대사회에 효가 멀어지고 비판된 건 결국 본질이 아닌 효 실천 방법의 일시적인 변질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날 현대적 효개념 재정립의 필요성을 말하며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효 개념의 재정립이 아닌 효 실천 방법의 재정립이다. 이미 말했듯 효 개념이 달라지면 그것은 더 이상 효가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효 개념이라며 배려, 존중, 사랑, 공경, 칭찬, 하모니 등등을 말한다. 모두가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면서 설득력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효 실천 방법의 하나일 뿐 효 개념이 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amp;lsquo;효를 칭찬이라 한다면 칭찬은 효다&amp;rsquo;란 것도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성립 불가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효 실천 방법을 개념으로 오인하면 안 될 이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음은 실천 방법의 차이에 따른 편견 배제다. 우리 사회는 다문화, 다종교사회다. 단일민족도 옛날얘기가 됐으니 다민족 사회라 해도 틀리지 않다. 다행히 효는 종교, 문화, 민족(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다. 동서양은 물론 유교, 불교, 기독교가 따로 없다. 방법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개념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방법적 차이로 인한 상호 비방은 곤란하다. 편중된 사고로 다른 종교, 문화, 민족의 효를 폄훼하거나 비판은 삼가야 한다. 구한말 오랑캐로 치부하던 서양 선교사가 고향에 계신 부모에게 편지 쓰는 것을 보고는 저들도 효를 아는 문명적 인간임을 인식했듯 모두가 공감하는 효문화 진작을 통해 이 사회가 상호 존중 배려하는 화해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lt;/p&gt;
&lt;div&gt;
&lt;div&gt;&lt;span&gt;&amp;nbsp;&lt;/span&gt;&lt;b&gt;금강일보&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707070;&quot;&gt;admin@ggilbo.com&lt;/span&gt;&lt;/div&gt;
&lt;/div&gt;</description>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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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4 Jul 2022 09:45:33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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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태어나줘서 고마워!</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6</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MBIs4/btrFkrjbMTh/zPcA7PtnI5dzgQDyAZJS2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MBIs4/btrFkrjbMTh/zPcA7PtnI5dzgQDyAZJS2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MBIs4/btrFkrjbMTh/zPcA7PtnI5dzgQDyAZJS2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MBIs4%2FbtrFkrjbMTh%2FzPcA7PtnI5dzgQDyAZJS2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효(孝)란 글자는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老)을 젊은 자녀(子)가 짊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한마디로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모습이다. 강자의 약자 보호가 효라면, 효는 매우 합리적이다. 전통사회에서도 확인가능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창 젊어서 조정에 나아가 일하다가 부모가 나이 들어 홀로 거동할 수 없게 될 때쯤 부모 돌봄을 위한 사직 상소를 올렸다. 왕조실록에 전하는 이런 부모 돌봄 사례는 매우 많다. 임금도 그런 관리의 뜻을 존중했고, 때론 고향 근처 지방직으로 발령 내어 부모 돌봄을 배려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강자의 약자 보호기능은 사라져갔다. 약자가 강자에게 헌신 봉사 희생하는 것을 효라 여기며 가르쳤다. 어린 아이와 나약한 여성들이 그 희생의 중심에 섰다. 효행기록을 담은 수많은 자료에는 한창 어린나이의 청소년들과 어린 나이에 시집온 여인들의 헌신적인 희생 사례가 수두룩하게 실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의 대표 효행설화 심청전도 같은 맥락이다. 보호받아야할 청소년들이 효란 명분하에 희생되는 모습들이다. 강자의 약자 보호 기능이 약자의 강자 보호기제로 바뀐 것이다. 효개념의 완전 변질이자 왜곡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amp;lsquo;브로커&amp;rsquo;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한 아이를 버리려다 생긴 일들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내용 속 어른, 아이 대부분 버려진 추억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심 무대도 고아원이다. 버려진 아이는 인신매매범 손에 넘어갔다. 그러나 낳은 정이 빛났다. 애를 다시 찾으려는 엄마의 모성본능이 이야기를 반전시켰다. 애를 손에 넣은 매매범들이 버릴 거면 왜 낳았느냐 꾸짖자 &amp;ldquo;뱃속 애는 죽여도 되고 낳아서 버리면 안 되냐&amp;rdquo;며 오히려 엄마가 반문했다. 오늘날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하며 돌아보아야 할 내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약자 아이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모나 어른들의 그때그때 편의에 따른 선택만을 기다린다. 간간이 보이는 아이의 옹알이와 미소, 그리고 울음소리만이 존재감을 표현할 뿐이다. 그 때마다 아이의 무게감은 주연배우 못지않다. 고아원에서 함께 따라나선 아이 역시도 버려진 아이다. 좀 자란 철부지 어린아이도 아직은 사랑받을 존재이지 누구를 위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약자중의 약자일 뿐이다. 강자의 약자보호가 효라고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므로 약자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소 짓고 옹알이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그래도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쁨, 행복을 전해준다면 그것으로 넉넉히 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라면서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면 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할 대상이지 누구를 위해 헌신 봉사 희생할 존재는 아니다. 부모 위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상당수가 효의 본래 취지에서 어긋난다. 영화 &amp;lsquo;브로커&amp;rsquo;는 아기를 버리려다 모성본능이 작동하며 다시 찾아온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이 곳곳에 서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키울 자신도 없고, 여건도 아니지만 좋은 가정에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모정의 마지막 바람이 담겼다. 처음에는 버렸고, 다음엔 돈벌이 대상이 되었지만, 모성본능, 자애본능이 발동하면서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됐다. 약자 아이를 향한 강자 어른들의 배려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자신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컸기 때문에 어느 게 최적이고 최선인지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이제 버려진 아이의 정착할 곳이 정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이를 돌볼 양부모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amp;ldquo;아이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amp;rdquo;라고 말하며 강자들의 책무에 감사의 예를 표했다.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친모는 &amp;ldquo;태어나줘서 고마워!&amp;rdquo;라고 말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됐다. 어린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고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호해야할 강자다. 어린아이가 커서 강자가 될 때면 어린이를 보호했던 어른은 약자가 되어 강자의 보호를 받게 된다. 결국 효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lt;/p&gt;
&lt;div&gt;
&lt;div&gt;&lt;span&gt;&amp;nbsp;&lt;/span&gt;&lt;b&gt;금강일보&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707070;&quot;&gt;si0738@geumgang-ilbo.com&lt;/span&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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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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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Jun 2022 20:12: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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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출산율을 높일 수만 있다면</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5</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oeckh/btrESHtU6Mx/KkjBPijCKUxbk3ihUQM6n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oeckh/btrESHtU6Mx/KkjBPijCKUxbk3ihUQM6n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oeckh/btrESHtU6Mx/KkjBPijCKUxbk3ihUQM6n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oeckh%2FbtrESHtU6Mx%2FKkjBPijCKUxbk3ihUQM6n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부터 인구는 부강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부국강병을 위한 방법으로 인구정책만큼 심혈을 기울인 것도 없다. 특히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의 경우 제후국들은 좋은 정치로 주변 백성들을 모으려고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를 위한 정책결정도 중요했고 관리 집행할 유능한 지도자도 필요했다. 지식인 전문가 그룹 제자백가의 등장 배경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춘추시대 월나라 이야기다. 초나라가 오나라와 싸우자 월나라는 이웃한 오나라 편을 들지 않고 초나라 편을 들었다. 이후로 월은 오와 원수가 됐고 결국 싸워 패했다. 전쟁에서 진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정치를 개혁하고 경제력을 증강시켜 마침내 오나라를 공격해서 승리했다. 구천의 정치개혁과 경제력 증강 프로젝트의 핵심은 백성들의 신뢰회복과 인구 증가책이었다. 백성들의 신뢰회복은 복지정책에 힘쓰는 일이었고 인구정책은 조혼(早婚)과 출산장려를 기본으로 했다. 마치 물이 한군데로 모이듯 백성들이 몰려들기를 기대하며 펼친 정책들이다. 먼저 젊은 남자는 나이든 부인을 맞이하지 못하게 하고 늙은 남자는 젊은 부인을 들이지 못하게 해 우월한 출산 환경을 조성했다. 또 여자 나이 열일곱이 돼 시집을 가지 않거나 남자가 스물이 되도 장가를 들지 않으면 부모에게 벌을 내렸다. 조혼책으로 인구를 늘리려는 셈법이다. 산모를 관청에 보고하면 의원을 보내어 간호했고 남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개 한 마리를,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돼지 한 마리를 각각 하사했다. 세 쌍둥이를 낳으면 유모를 보내주고 쌍둥이를 낳으면 양식을 보탰다. 고아, 과부, 병자, 빈약자의 아들은 관청에서 가르치고 먹였다. 주변의 뛰어난 학자들에게는 거처와 의복을 제공했고 왕이 직접 쌀과 기름을 싣고 다니면서 노니는 젊은이를 보면 모두 배불리 먹고 마시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묻고 대화하며 신뢰관계를 쌓았다. 그러자 월나라의 인구는 급속히 늘었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왕을 부모처럼 여겼다. 공경과 사랑, 배려와 존중으로 나라를 이끌자 백성들은 자식된 도리로 부모와 나라의 원수 갚는 일을 당연시했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이다. 늘어난 인구와 최고지도자 왕이 백성의 신뢰를 얻으며 가능했던 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상은 국어(國語), 월어(越語)에 나온 내용이다. 고대 춘추시대 일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부 내용은 오늘날 정책과 꼭 맞닿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복지 포퓰리즘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다. 어찌됐든 핵심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구수 늘리기고 백성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들이다. 이 같은 정책을 펼친 구천은 결국 오랜 숙원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1세기 무한경쟁의 시대, 인구는 가장 큰 국가적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심각한 출산율 저하로 불투명한 장래를 염려하게 됐다. 문 닫는 유치원이 생기고 초&amp;middot;중&amp;middot;고교의 교실 공실률이 늘고, 정원을 채우지 못한 지방의 대학들은 초비상에 걸렸다. 갈수록 미혼, 비혼 인구는 급격히 늘고 있다. 모두가 달갑지 않은 소식들이다. 복지정책은 물론 각종 혜택을 통해 인구를 늘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아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가 경쟁력에서 인구만큼 소중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큰 소리치는 것도 십수억 인구 덕분이다. 베트남 등 새롭게 떠오르는 국가들도 1억 내외의 인구를 보유한 나라들이다. 아무리 높은 국민소득이 있는 나라라도 인구가 적으면 국제적 영향력은 별로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구정책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중장기적 인구증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상대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여야정치인과 지선 후보들, 국가 존망이 걸린 출산 문제에 그 뛰어난 머리를 활용한다면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lt;/p&gt;
&lt;div&gt;
&lt;div&gt;&lt;span&gt;&amp;nbsp;&lt;/span&gt;&lt;b&gt;금강일보&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707070;&quot;&gt;admin@ggilbo.com&lt;/span&gt;&lt;/div&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문화</category>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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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5 Jun 2022 21:22: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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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태어나줘서 고마워!</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4</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Ir57t/btrETRisvHZ/njakHPqcXYZrrHkiGwyeO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Ir57t/btrETRisvHZ/njakHPqcXYZrrHkiGwyeO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Ir57t/btrETRisvHZ/njakHPqcXYZrrHkiGwyeO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Ir57t%2FbtrETRisvHZ%2FnjakHPqcXYZrrHkiGwyeO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효(孝)란 글자는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老)을 젊은 자녀(子)가 짊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한마디로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모습이다. 강자의 약자 보호가 효라면, 효는 매우 합리적이다. 전통사회에서도 확인가능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창 젊어서 조정에 나아가 일하다가 부모가 나이 들어 홀로 거동할 수 없게 될 때쯤 부모 돌봄을 위한 사직 상소를 올렸다. 왕조실록에 전하는 이런 부모 돌봄 사례는 매우 많다. 임금도 그런 관리의 뜻을 존중했고, 때론 고향 근처 지방직으로 발령 내어 부모 돌봄을 배려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강자의 약자 보호기능은 사라져갔다. 약자가 강자에게 헌신 봉사 희생하는 것을 효라 여기며 가르쳤다. 어린 아이와 나약한 여성들이 그 희생의 중심에 섰다. 효행기록을 담은 수많은 자료에는 한창 어린나이의 청소년들과 어린 나이에 시집온 여인들의 헌신적인 희생 사례가 수두룩하게 실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의 대표 효행설화 심청전도 같은 맥락이다. 보호받아야할 청소년들이 효란 명분하에 희생되는 모습들이다. 강자의 약자 보호 기능이 약자의 강자 보호기제로 바뀐 것이다. 효개념의 완전 변질이자 왜곡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amp;lsquo;브로커&amp;rsquo;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한 아이를 버리려다 생긴 일들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내용 속 어른, 아이 대부분 버려진 추억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심 무대도 고아원이다. 버려진 아이는 인신매매범 손에 넘어갔다. 그러나 낳은 정이 빛났다. 애를 다시 찾으려는 엄마의 모성본능이 이야기를 반전시켰다. 애를 손에 넣은 매매범들이 버릴 거면 왜 낳았느냐 꾸짖자 &amp;ldquo;뱃속 애는 죽여도 되고 낳아서 버리면 안 되냐&amp;rdquo;며 오히려 엄마가 반문했다. 오늘날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하며 돌아보아야 할 내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약자 아이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모나 어른들의 그때그때 편의에 따른 선택만을 기다린다. 간간이 보이는 아이의 옹알이와 미소, 그리고 울음소리만이 존재감을 표현할 뿐이다. 그 때마다 아이의 무게감은 주연배우 못지않다. 고아원에서 함께 따라나선 아이 역시도 버려진 아이다. 좀 자란 철부지 어린아이도 아직은 사랑받을 존재이지 누구를 위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약자중의 약자일 뿐이다. 강자의 약자보호가 효라고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므로 약자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소 짓고 옹알이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그래도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쁨, 행복을 전해준다면 그것으로 넉넉히 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라면서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면 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할 대상이지 누구를 위해 헌신 봉사 희생할 존재는 아니다. 부모 위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상당수가 효의 본래 취지에서 어긋난다. 영화 &amp;lsquo;브로커&amp;rsquo;는 아기를 버리려다 모성본능이 작동하며 다시 찾아온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이 곳곳에 서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키울 자신도 없고, 여건도 아니지만 좋은 가정에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모정의 마지막 바람이 담겼다. 처음에는 버렸고, 다음엔 돈벌이 대상이 되었지만, 모성본능, 자애본능이 발동하면서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됐다. 약자 아이를 향한 강자 어른들의 배려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자신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컸기 때문에 어느 게 최적이고 최선인지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이제 버려진 아이의 정착할 곳이 정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이를 돌볼 양부모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amp;ldquo;아이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amp;rdquo;라고 말하며 강자들의 책무에 감사의 예를 표했다.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친모는 &amp;ldquo;태어나줘서 고마워!&amp;rdquo;라고 말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됐다. 어린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고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호해야할 강자다. 어린아이가 커서 강자가 될 때면 어린이를 보호했던 어른은 약자가 되어 강자의 보호를 받게 된다. 결국 효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lt;/p&gt;
&lt;div&gt;
&lt;div&gt;&lt;span&gt;&amp;nbsp;&lt;/span&gt;&lt;b&gt;금강일보&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707070;&quot;&gt;si0738@geumgang-ilbo.com&lt;/span&gt;&lt;/div&gt;
&lt;/div&gt;</description>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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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5 Jun 2022 21:19:04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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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태종 이방원을 통해 본 효와 사랑의 크기</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3</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hi4Nv/btrA68Inutc/fej3jZ8xKigxPU3Th2AQR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hi4Nv/btrA68Inutc/fej3jZ8xKigxPU3Th2AQR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hi4Nv/btrA68Inutc/fej3jZ8xKigxPU3Th2AQR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hi4Nv%2FbtrA68Inutc%2Ffej3jZ8xKigxPU3Th2AQR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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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금강일보] 하늘의 왕자 독수리는 까마득한 바위 절벽에 둥지를 틀고 새끼들이 날기 전까지는 절벽 둥지에서 며칠씩 굶기고 저희들끼리 보내게 한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죽이고 먹어 치워버려도 어미는 상관하지 않는다. 밀림의 왕자 사자는 강인한 종족 번식을 위해 새끼들을 일부러 낭떠러지로 떨어트린다고 한다. 물론 강하게 키운다는 말이지 실제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최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뭔가 남다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로 회자되는 말들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자녀 모두가 소중하다며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말하지만 더 소중히 여기는 손가락이 없는 건 아니다. 최고를 상징하는 엄지가 있는가 하면 꼬래비를 상징하는 새끼손가락도 있다. 입으로는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식마다 용도가 다르고, 기대하는 것도 다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손가락의 용도가 제각각이듯 사회나 국가에서 자식들의 쓰임도 같을 수 없다. 특히 대권을 이어야 할 왕가의 경우가 그렇다. 왕자는 여럿이어도 왕은 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 아무리 아들이 많아도 한 사람만 선택받을 수 있다. 여기서 열 손가락 모두 소중하다는 말은 무의미해진다. 오로지 엄지로서 한 아들만 소중하고 나머지는 조용히 있든지 아니면 죽어줘야 한다. 이것이 왕가의 운명이자 비극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요즘 한창 &amp;lsquo;태종 이방원&amp;rsquo;이 방영되고 있다. 왕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한 본처 소생들이야말로 끈끈한 부자지간이자 동지들이다. 아들들도 아버지의 큰 뜻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으니 효자의 도리를 다한 셈이다. 아무나 이룰 수 없는 대업을 이뤘으니 아버지의 사랑, 곧 논공행상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 없다. 보통은 부자자효(父慈子孝), 부모의 사랑에 따른 자녀들의 효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자효부자(子孝父慈), 자녀들이 아버지 위해 싸웠으니 아버지가 자녀 위해 사랑을 베풀 차례다. 그런데 정작 앞장섰던 본처 소생들은 소외되고 대업 이후 낳은 왕자들이 그 사랑을 독차지했다. 차린 자와 누리는 자가 달랐던 것이다. 당연히 차린 밥상을 대할 줄 알았던 전처 소생들의 반란이 시작됐고 그것이 두 차례에 걸친 비극, 왕자의 반란이다. 마치 독수리 새끼들이 절벽 낭떠러지에서 서로 차지하려고 밀치는 형국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아내들의 내조가 빛났다. 아버지 이성계의 아내 강 씨도, 아들 이방원의 아내 민 씨도 뛰어난 지혜와 용기로 남편들을 다독였다. 전처소생을 물리치고 자신의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주도록 한 것도 여성(이성계 아내)이고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도록 분위기를 독려한 것도 여성(아방원 아내)이다. 두 여성이 사랑과 배신, 효와 불효의 사이를 오가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절묘한 심리를 이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 베푼 것은 사랑이지만 전처 소생들에게는 배신이었다. 시아버지를 돕게 한 것은 효였지만 시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게 한 것은 불효였다. 이 때 절묘한 심리란 &amp;lsquo;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amp;rsquo;는 부자간의 특별한 정리를 말한다. 효가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논리다. 이성계도 이방원도 여기에 무너졌다. 아버지의 뜻이기에 따라야 하는 게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이는 잠깐이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불효가 대종을 이뤘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차마 내치지 못했다. 효보다 사랑이 컸다. 이성계는 몇 차례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 이방원을 내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못했다. 이를 간파한 이방원의 처 민씨는 시아버지 이성계를 농락했고 결국 자신의 남편 이방원도 농락했다. 내쳐진 친정 복원에 맏아들로 세자가 된 양녕대군을 활용했고 양녕대군은 아버지 이방원이 할아버지 이성계에 했던 방식대로 저항하며 대들었다. 뜻밖의 저항에 부딪힌 이방원은 그간 아버지 이성계에 했던 자신의 불효를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다. 효와 사랑, 무엇이 큰가를 확인시켜주는 명장면이다.&lt;/p&gt;</description>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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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 May 2022 08:33: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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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대전, 노잼을 특화하자</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2</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tcghP/btrxezh732A/fAgaD0k77Wow9RHN4C6Vh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tcghP/btrxezh732A/fAgaD0k77Wow9RHN4C6Vh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tcghP/btrxezh732A/fAgaD0k77Wow9RHN4C6Vh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tcghP%2Fbtrxezh732A%2FfAgaD0k77Wow9RHN4C6Vh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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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금강일보] 대전을 일명 '노잼도시'라 말한다. 재미없는 도시란 뜻이다. 난 어린 시절 대전의 추억이 워낙 재밌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애시당초 대전을 노잼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개인적 성향이 시끄럽고 요란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도 대전을 노잼이라 생각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에게 오히려 대전은 최고의, 최적의 꿀잼 도시다. 그런데도 주변에선 대전을 노잼이라 말하며 노잼에서의 탈출을 강하게 요구한다. 대전을 노잼이라 함은 딱히 할 것, 놀 것, 갈 곳, 즐길 곳이 없어서란다. 그저 그 유명한 빵집의 튀김소보로 외 별난 자랑거리가 없다고도 말한다. 서울의 신촌, 홍대 앞, 압구정 로데오거리처럼 젊음의 거리도 없고 부산 돼지국밥, 전주 비빔밥, 춘천 닭갈비, 천안 호두과자, 언양 불고기처럼 대전을 대표할 먹거리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 대전사람 스스로 말하면 자학이고 남들이 말하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대전에도 있을 건 다 있다. 갈 만한 곳, 즐길 만한 것, 맛난 먹거리도 다른 도시 못지않다. 그럼에도 노잼이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재미없다. 무슨 얘기를 해도 반응이 늦거나 아예 없다. 공연하러 오는 가수들도 대전무대서는 앵콜곡을 준비 안 한다고 한다. 어차피 앵콜 반응이 없을 테니 앵콜곡 준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강의를 주로 하는 이 사람의 경험도 비슷하다. 다른 곳에서 감정 반응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던 부분인데 같은 내용이건만 대전에선 거의 무반응이다. 어느 지역에선 &amp;ldquo;옳소!&amp;rdquo; 하며 함성과 박수소리가 함께 터졌지만 대전만은 조용하다. 간혹 이를 지적해서 말하면 &amp;ldquo;지들은 집에 가서 박수쳐유&amp;rdquo;라고 말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노잼 얘길 하면 그래도 개그맨은 대전출신이 많다며 이의를 단다. 이유는 간단하다. 속마음 감추고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은근히 할 얘기 안할 얘기 다하는 데 그 웃음 코드가 있다. 노잼을 꿀잼으로 승화시키는 대전인(人)만의 은은한 비결이다. 안 괜찮을 때 &amp;ldquo;괜찮아유&amp;rdquo; 하며 너스레 떨 때 사람들은 오히려 즐거워한다. 이런 삶의 모습이 대전 사람들에겐 자연스레 배어 있는 것 같다. 외지 사람들은 불편해도 현지 대전 사람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게 느끼는 것들이다. 대전만의 &amp;lsquo;괜찮아유&amp;rsquo; 논리의 생활화이다. 예컨대 서대전이란 지명은 하나지만 도시철도역, 기차역, 고속도로IC는 모두 다른 곳에 있다. 근처도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있어도 타지 사람들은 불편할지언정 대전 사람들은 그리 불편한 것 같지 않다. 대전이 자랑하는 대덕연구단지가 외지인들은 당연히 대덕구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유성구에 있음도, 대전 사람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수도권 신공항을 인천 영종도에 건설하고 처음 서울공항이라 명명했을 때 인천사람들이 난리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호남선 KTX 노선이 서대전역을 비켜갈 때 잠시 잠깐 불만을 표출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걸 보면 대전은 지역이 노잼이기보다는 사람이 노잼인 것만은 분명하다. 감정표현이 분명한 영&amp;middot;호남의 중간지대라서 그렇다는 둥 여러 원인을 말하지만 감정과 언어 표현에 신중했던 그 옛날 양반정신의 자연스러운 현재적 구현일 수도 있고, 교육도시, 과학도시로서 절제능력이 뛰어난 식자층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람이 재미없든 지역이 재미없든 대전을 노잼도시라 한다면 굳이 이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특화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전의 남쪽에는 뿌리공원과 효문화진흥원 등 전통문화가 있다. 다른 시&amp;middot;도에 전혀 없는 대전만의 것이다. 효와 뿌리, 역시 꿀잼이기보다는 노잼 소재이다. 대전의 북쪽에 있는 각종 연구단지 역시도 노잼 소재이니 대전에는 한결같이 노잼이 대종을 이룬다. 사람도 노잼, 지역 인프라도 노잼이다. 그렇다면 노잼은 다른 데 없는 대전만의 문화이고 그 중심에 &amp;lsquo;효&amp;rsquo;와 &amp;lsquo;과학&amp;rsquo;이 있다. 남쪽의 전통적 효, 북쪽의 현대과학, 대전만의 특화된 노잼 이미지로 구축하며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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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span&gt;&amp;nbsp;&lt;/span&gt;&lt;b&gt;금강일보&lt;/b&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707070;&quot;&gt;opinion@ggilbo.com&lt;/span&gt;&lt;/div&gt;
&lt;/div&gt;</description>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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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Mar 2022 19:44: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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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행복도시 대전</title>
      <link>https://dukkyun.tistory.com/8366401</link>
      <description>&lt;h4 data-ke-size=&quot;size20&quot;&gt;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lt;/h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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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81v1h/btruryafChu/fgKkK1APAfQtw688pWt85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81v1h/btruryafChu/fgKkK1APAfQtw688pWt85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81v1h/btruryafChu/fgKkK1APAfQtw688pWt85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81v1h%2FbtruryafChu%2FfgKkK1APAfQtw688pWt85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69&quot; height=&quot;303&quot; data-origin-width=&quot;269&quot; data-origin-height=&quot;303&quot;/&gt;&lt;/span&gt;&lt;/figu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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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금강일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인류를 위협하는 기아, 역병, 전쟁에서 벗어나면 행복할까? 한동안 배부르면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든 식도락 여행하며 골라먹는 재미로 사는 요즘은 그럼 행복한가? 어렵던 시절 지겹도록 먹던 보리밥을 대하며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호환 마마가 들끓던 시절에는 이것만 사라지만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전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지 않은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평화를 외치며 전쟁과 테러 억제를 위한 천문학적 비용을 써가며 경쟁하고 있지만 전쟁과 테러로부터 자유롭게 됐는가. 여전히 인류는 역병과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런 것들은 너무 큰 문제라서 인류의 행복 조건은 될지언정 소소한 개인의 행복 조건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럼 개인의 행복 조건은 무엇일까? 장수(長壽), 부(富), 강녕(康寧), 호덕(好德), 선종(善終) 등 우리 전통의 오복(五福)에 있지 않을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기왕이면 넉넉한 형편에서 풍성하고 편안하게 살면서 주변에 덕을 끼치며 선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이만한 복이 또 있을까.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삶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행복이란 글자엔 그 의미가 그대로 담겼다. 소전체에 나온 행복의 행(幸)자는 일찍 죽는다는 뜻의 요(夭)자가 거꾸로 된 형태이다. 사람의 정면 모습을 상형한 큰 대(大)에서 머리가 기울어진 삐칠 별(?)이 더해져서 &amp;lsquo;죽음&amp;rsquo;을 상징하는 요(夭)자가 되었고, 그것을 거꾸로 놓은 모습에서 행(幸)자가 나왔으니 행은 &amp;lsquo;죽음(夭)을 면하다&amp;rsquo;는 뜻이 됐다. 또 그 행자가 임금의 지방 순찰을 뜻하는 순행(巡幸)으로도 쓰였으니 그 지역의 복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조건이었다. 순행에 따른 사전 정지작업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또 지도자가 그만한 선물을 지역에 안겨 주었으니 지역민들은 행복할 수 있었다. 정치적 안배와 지도력이 지역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갑골문에 보이는 행복의 복(福)자는 술독(酉)을 두 손으로 받들고 조상의 제단(示) 앞에 술을 올리는 모습이다. 두 손의 모양은 글자에서 사라졌지만 조상에게 술을 올려 복을 기원하는 제사 모습이 복자에 담겼다. 부유할 부(富)는 그런 술독을 집안에 보관한 형태이고, 술을 보관한 집은 넉넉하다는 의미이다. 술은 농경사회 가장 소중한 부의 상징이었고, 그것을 조상님께 올리면서, 부와 행복을 기원했던 것이다.&lt;/p&gt;
&lt;div id=&quot;AD159790756236&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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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근 대전세종연구원이 조사한 대전시민의 행복도 자료가 나왔다. 10점 만점으로 이뤄진 항목별 지표에 따르면 &amp;lsquo;의료서비스 접근성(6.8점)&amp;rsquo;과 &amp;lsquo;생활환경의 안정성(6.7점)&amp;rsquo;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amp;lsquo;가족구성원 간 관계 만족도(6.5점)&amp;rsquo;, &amp;lsquo;공중보건 편의성(6.3점)&amp;rsquo; 등의 순서였다. 앞서 행복의 조건으로 언급한 건강장수, 양호한 정치적 환경, 조상공경의 효, 자발적 도덕실천 등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건강을 챙길 수 있는 넉넉한 의료시설, 정치적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부기관, 인간관계상의 도덕적 삶과 조상을 추념하는 뿌리공원과 효문화진흥원이 있는 대전이 행복 추구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전시민 스스로 생각하는 &amp;lsquo;행복감(5.8점)&amp;rsquo;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아마도 더 큰 행복에 대한 기대치의 결과 때문이 아닐까. &amp;lsquo;우울감(5.1점)&amp;rsquo; &amp;lsquo;근심 걱정(5.3점)&amp;rsquo; &amp;lsquo;소득 충분성(4.9점)&amp;rsquo; 등이 불만족 요소라면 이는 상대적 빈곤감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행복조건 속에 불만족 부분이 공존하는 것은 상대성에 기인한다. 지역별 행복도가 다른데, 유성구(5.9점)등 신도시 지역이 높았고 서구, 동구(이상 5.7점), 중구(5.6점) 등은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조금 낮았다. 작은 차이라도 모두가 향유해야할 대전의 행복조건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함께 조절하고 배려함이 풀어야할 향후과제라 생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저작권자 &amp;copy;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lt;/p&gt;</description>
      <category>문화</category>
      <author>dukkyun</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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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 Mar 2022 15:18: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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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대전에는 시간과 기억이 만나는 곳이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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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Feb 2022 14:14: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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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착한 대전호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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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Feb 2022 14:12: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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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강칼럼] 효와 오징어 게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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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9 Dec 2021 21:38: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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